우리말 절반은 한자에서 왔다
국어사전을 펼쳐 표제어를 헤아려 보면, 한자에서 온 말이 순우리말보다 오히려 많다. 절반을 훌쩍 넘는다. 문제는 우리가 그 사실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학교(學校)'나 '전화(電話)'처럼 딱 봐도 한자 티가 나는 말만 한자어인 게 아니다. '심지어(甚至於)', '어차피(於此彼)', '별안간(瞥眼間·눈 깜짝할 사이)', '급기야(及其也)'처럼 토박이말 같은 부사들도 대부분 한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도대체(都大體)'와 '하필(何必)'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만든 한자어
재미있는 건, 한자어라고 해서 전부 중국에서 건너온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조상이 한자를 재료 삼아 직접 조립한 말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게 '감기(感氣)'다. 정작 중국에서는 감기를 '감모(感冒)'라 하지 感氣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편지를 뜻하는 '편지(便紙)', 이름을 적은 종이 '명함(名銜)', 고달픈 삶을 뜻하는 '고생(苦生)'도 우리식으로 빚은 한자어로 본다. 한자라는 부품은 공유하되, 조립법은 한국 고유였던 셈이다.
한자인 걸 잊어버린 말들
세월이 흐르며 한자 옷을 완전히 벗어 버린 말들도 있다. 지금은 순우리말이라 여기지만 실은 한자어인 낱말들이다.
- 짐승 ← 중생(衆生): 원래 불교에서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뜻하다가, 소리가 닳으며 동물만 가리키게 됐다.
- 사냥 ← 산행(山行): '산에 간다'는 말이 짐승 잡는 일로 굳어졌다.
- 성냥 ← 석류황(石硫黃): 불붙이는 재료 이름이 그대로 물건 이름이 됐다.
- 김치 ← 침채(沈菜): 소금물에 담근 채소라는 뜻의 한자어가 '딤치'를 거쳐 지금 발음이 됐다.
이런 변신을 보면 말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모양과 뜻을 바꿔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더 많은 사례가 궁금하다면 재미있는 낱말의 유래를, 반대로 한자 없이 온전히 우리 것인 말이 보고 싶다면 알아두면 예쁜 순우리말을 곁들여 읽어 보길 권한다. 한자어·순우리말과 나란히 우리말 어휘의 한 축을 이루는 외래어 표기법 기초까지 보면, 우리말 낱말 창고의 삼각 구도가 한눈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