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어(死語)와 옛말 이야기

한자어에 밀려 통째로 사라진 옛말과, 소리는 남았지만 뜻이 뒤바뀐 낱말을 통해 우리말이 살고 죽는 여러 방식을 짚어 보는 글이다.

우리말에도 수명이 있다. 날마다 쓰던 낱말이 어느새 입에서 밀려나고, 사전 한구석에 '옛말'이라는 딱지를 단 채 박제된다. 이렇게 쓰임을 잃은 말을 사어(死語)라고 부른다. 그런데 말이 죽는 방식은 한 가지가 아니다.

통째로 사라진 말들

가장 흔한 죽음은 한자어에 자리를 내주는 경우다. 본래 숫자 100은 순우리말로 '온', 1000은 '즈믄'이었다. 지금은 백(百)·천(千)에 완전히 밀렸지만, '온'은 '온갖'(온 가지)이나 '온종일' 속에 화석처럼 박혀 살아남았다. 고려가요에서 "즈믄 해를 살고 싶다"며 천 년을 노래하던 그 즈믄이다. 사물 이름에서도 이런 교체가 줄줄이 일어났다.

  • 뫼 → 산(山)
  • 가람 → 강(江)
  • 미르 → 용(龍)

특히 '미르'는 은하수를 뜻하는 '미리내'(미르+내, 곧 용이 사는 시내) 안에 흔적을 남겼다. 우산을 뜻하던 '슈룹'처럼 아예 잊혔던 말이 2022년 드라마 제목으로 소환되며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죽은 것이 '뜻'일 때

더 흥미로운 죽음은 껍데기(소리)는 멀쩡히 남고 속(의미)만 뒤바뀌는 경우다. 훈민정음 서문의 "어린 백성"을 오늘날 감각으로 읽으면 오해가 생긴다. 여기서 '어리다'는 나이가 적다는 뜻이 아니라 '어리석다'는 뜻이었다. 같은 서문의 "어엿비 너겨"도 그렇다. '어엿브다'는 지금의 '예쁘다'가 아니라 '불쌍하다'였으니, 세종이 백성을 가엾이 여겼다는 말이다.

낱말이 점점 험한 쪽으로 미끄러지기도 한다. '놈'은 원래 '사람, 이 사람'을 가리키는 중립적인 말이어서, 훈민정음에도 "펴지 못할 놈이 많다"처럼 담담하게 쓰였다. 그 말이 오늘날엔 욕에 가깝게 굳어 버렸다.

말은 다시 살기도 한다

사어가 사라지기만 하는 건 아니다. 서울의 수돗물 이름 '아리수'는 고구려가 한강을 부르던 옛 이름을 끌어온 것이고, 누리호(누리=세상)처럼 잊혀 가던 순우리말이 로켓 이름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옛말을 들여다보는 일은 곧 우리말이 걸어온 길을 되짚는 일이다. 더 예쁜 옛말이 궁금하다면 알아두면 예쁜 순우리말을, 왜 이토록 한자어가 많아졌는지는 우리말 속 한자어 이야기를, '어린 백성'의 원문이 궁금하다면 훈민정음과 자모의 탄생을 함께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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