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하나, 선 둘에서 시작된 모음
세종이 모음을 만든 원리는 자음과 전혀 달랐다. 자음이 입·혀·목구멍 같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떴다면, 모음은 세상을 이루는 세 바탕, 곧 하늘(天)·땅(地)·사람(人)을 본떴다. 이 셋을 한데 묶어 삼재(三才)라 부른다.
- ㆍ(아래아): 둥근 하늘을 점 하나로 그렸다.
- ㅡ: 평평한 땅을 가로선으로 눕혔다.
- ㅣ: 꼿꼿이 선 사람을 세로선으로 세웠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ㆍ(아래아)가 열쇠다. 이 점을 땅(ㅡ) 위에 찍으면 ㅗ, 아래에 찍으면 ㅜ가 된다. 사람(ㅣ)의 오른쪽에 찍으면 ㅏ, 왼쪽에 찍으면 ㅓ다. 단 세 기호의 조합만으로 기본 모음을 모두 길어 올린 셈이다.
밝은 소리와 어두운 소리
점(하늘)이 위나 바깥에 놓인 ㅏ·ㅗ는 밝고 가벼운 양성모음, 안이나 아래에 놓인 ㅓ·ㅜ는 무겁고 어두운 음성모음으로 나뉜다. 이 구분은 오늘날 낱말의 어감으로 생생히 살아 있다.
- 알록달록 ↔ 얼룩덜룩
- 반짝반짝 ↔ 번쩍번쩍
- 소곤소곤 ↔ 수군수군
모음만 밝은 쪽·어두운 쪽으로 갈아 끼웠을 뿐인데 크기와 무게의 느낌이 확 달라진다. 나아가 양성은 양성끼리, 음성은 음성끼리 어울리려는 성질을 모음조화라 한다. '잡아'와 '접어'처럼 같은 자리의 어미가 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휴대폰 자판에 살아남은 삼재
이 원리는 박물관 속 옛이야기가 아니다. 휴대폰의 '천지인 자판'이 바로 그 후예다. ㆍ, ㅡ, ㅣ 단 세 글쇠만으로 ㅏ·ㅓ·ㅗ·ㅜ는 물론 ㅑ·ㅕ까지 찍어낼 수 있는 건, 600년 전 세종이 모음을 세 조각으로 쪼개 설계해 둔 덕분이다.
자음이 발음기관을 본뜬 사연은 자음, 발음기관을 본뜬 글자에서, 이 글자들이 처음 태어난 배경은 훈민정음과 자모의 탄생에서 이어 볼 수 있다. ㆍ와 기본 모음이 겹쳐 ㅘ·ㅝ가 되는 과정은 이중모음 이야기에서 만난다.